IT의 중심에서

나이 든 개발자가 살고 있는 IT 현장 이야기

읍참마속(泣斬馬謖)

읍참마속은 아무리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라도, 군령이 서지 않으면 같이 갈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해주는 좋은 고사성어입니다.

일을 하다 보면, 능력이 뛰어나서 윗사람으로서 일하기 편한 사람도 있고, 조직원 들의 활기를 북돋우는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중요한 지시를 자주 어기거나, 전략적 방향에 동승하지 못하거나 공유가 되지 않는다면 빨리 서로 갈 길을 갈라서는게 좋습니다.

특히, 주변 상황이 위태로울수록 더더욱 그렇습니다. 정신을 집중하고 좁은 길을 통과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가볍고 걸음이 빨라야 하는데, 전략적 방향에 혼선이 생기고 업무지시가 자꾸 누락이 된다고 한다면 효과적인 행보를 할 수 없습니다.

서로 마음의 상처가 커지기 전에 헤어지는게 낫다고 봅니다.
읍참마속, 사업의 세계에서 칼날같은 원칙들이 어떻게 지켜져야 하는지를 알 수 있는 고사성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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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http://www.sungyoung.net/oldstory/horse.htm

삼국지에서 영웅호걸들이 스케일 크게 벌이는 인간드라마는 정말 흥미진진하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은 제갈공명이 울면서 마속을 베어 나라의 기강과 법질서를 잡는 장면이다.

(제갈공명의 출사표)
27세의 젊은 나이에 촉(蜀)나라 1세 군주 유비의 간곡한 청을 받아 그 진영에 합류한 공명은 오랫동안 나라의 기둥 역할을 하고 있었다. 국력이 약한 촉으로선 북쪽의 위(魏)와 동쪽의 오(吳) 사이에서 버텨내기가 무척 힘들었다. 인구는 위나라가 촉의 4배, 오나라가 2배나 되었다. 인재 층도 매우 얇아 공명이 이것 저것 다 챙겨야 했다.
장기전으로 가다가는 불리하다고 판단한 공명은 유명한 출사표를 2세 군주 유선에게 올리고 위나라 정벌에 나선다.

2세 유선은 그릇이 좀 모자라 공명도 다소 애를 먹었다. 출사표는 나라를 생각하는 공명의 애끓는 충정과 아울러 2세에 대한 걱정도 배어있다. 1차 북벌이 처음에는 잘 나가 상당한 전과를 올린다.
이 때 촉의 맹장 위연이 장안(위의 서울) 기습작전을 제안한다. 신중한 공명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정통적인 공격작전을 편다.

(북벌의 중요한 패전)
북벌전에서 가정(街亭)이란 곳이 전략적 요충이었다. 위나라 군사가 반드시 거쳐 나오게 되어 있는 곳이다. 매우 중요한 그쪽 지휘관은 위연 같은 역전의 장수가 갈 것으로 모두 예상하였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39세의 새파란 마속(馬謖)이었다. 모두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마속은 이론에 밝고 머리가 좋아 공명의 참모로서만 활약했을 뿐 실전경험이 전혀 없었다.
공명도 마속을 떠나보내면서 단단히 당부를 한다.

“가정 확보가 이번 전쟁의 관건이 된다며 길목을 지키되 높은 곳은 피하라는 주의사항까지 일러준다.”
전장에 도착한 마속은 공명의 당부를 무시하고 “산 위에 진을 친다.”
경험 많은 부하들이 위험하다고 말렸으나 고집을 부렸다. 군사이론을 들먹이며 두고 보라고 했다.

그러나 노련한 위군의 대장이 물을 끊고 화공책(火攻策)을 쓰자 대패하고 말았다. 주위의 도움으로 마속은 겨우 목숨을 건졌으나 군사의 대부분을 잃어버렸다.
이 때 조운, 위연 같은 노장들의 활약으로 전선이 총 붕괴되는 것은 겨우 수습했지만 위나라 정벌은 물 건너간 뒤였다.

(군령을 세우다.)
한중으로 서둘러 후퇴한 공명은 패전의 뒤처리에 착수한다. 맨 처음 마속을 끌어내어 군령위반으로 참수형에 처한다. 공명 자신도 최고의 지휘자로서 패전의 책임을 지고 3계급 강등을 차청했다.
공명은 마속을 높이 평가하여 동생같이 아꼈다. 주위에서 전란 중이니 인재를 아껴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자는 권고도 있었으나 이럴 때일수록 나라의 기강과 법을 세워야 한다면서, 울면서 (마속의) 목을 잘랐다.
공명은 법을 집행할 땐 “나는 저울 같아서 사람에 따라 무게가 다를 수 없다” 고 했다. 공명의 심경을 잘 아는 병사들도 같이 눈물을 흘렸다 한다.
이렇게 공명은 법가(法家)의 엄격함으로 나라를 다스렸는데 그것이 공평무사하여 모두 두려워하면서고 경애했다.

(한계를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
가뜩이나 인재 부족에 허덕이던 공명으로선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눈물이 나올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히 1세 유비가 임종시에 “마속은 실력보다 말이 앞서니 조심해서 쓰라”고 한 특별당부가 생각나서 더 슬피 울었는지 모른다.
유비라는 인물은 인재를 알아보고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데는 천부적 재능을 보인다. 그릇이 크고 덕성이 높은 유비와 머리 좋고 칼날 같은 공명이 좋은 콤비를 이뤄 나라를 다스렸는데, 유비가 죽고 난 후 한쪽에 구멍이 생긴 것이다.

(역사의 평가)
읍참마속을 두고 대부분 공명의 공평무사함을 칭송하지만 한쪽에선 공명의 한계를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을 잘 알아서 그에 알맞게 써야지 감당할 수 없는 자리를 주어 일도 망치고 사람도 망치고 나서 슬피 울어준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다.
역사는 되풀이 되는 것인데 지금이라고 그런 일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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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엔트리는 2011년 7월 14일에 님이 개발팀과 프로젝트에 게시하였으며 태그가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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