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개발자

이 글은 개발자로서 스타트업을 시작하려는 분들께 들려주고 싶습니다.

저는 젊어서 성공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경험을 쌓으려 돌아다녔습니다.
배우고 싶은 기술을 찾아 이직했고,
몸을 사리지 않고 현장경험들을 쌓았습니다.

그런데 힘들었습니다.
현장은 개발 이외 다른 능력들도 많이 필요했습니다.
이런 것에 조언해주는 사람은 거의 만나지 못했습니다.
좋은 선배가 있기를 바랐습니다.

개발과 사회가 만나는 부분,
개발과 산업이 만나는 부분,
이 분야 일들이 후배들(나)에게 전해져서
좀 더 나은 방법으로 일할 수 있길 바랬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내 앞에 좋은 선배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다 이런 결심을 했습니다.

“기다리거나 바라지 말자. 그냥 내가 스스로 그렇게 되자.”

가고자 하는 분야에 선구자가 없다면
누군가를 기다리기 보다.
직접 부닥쳐서 실력을 쌓아 가는게 가장 빠릅니다.


Facebook Paper 를 개발한 Creative Lab 사진
Facebook Paper 를 개발한 Creative Lab 사진

※ 링크 : ‘페이퍼(Paper)’를 둘러싼 15가지 이야기

얼마전 페이스북에서 출시한 “페이퍼”라는 서비스의 팀구성을 알 수 있습니다.
총 18명입니다.
이 구성에 기획자라는 명함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왜 없을까요?
우리가 아는 기획자의 역할은 누가 했을까요?

참고)

기획자는 필요없어.
이 글이 이렇게 읽히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회계개발자를 봅니다.
결산 할 때 소수점 둘째짜리에서 “반올림”을 합니다. (회사마다 다릅니다.)
그런데 소수점 둘째자리에서 반올림 한 후 덧셈해야 하는지,
덧셈을 한 후 소수점 둘째자리에서 반올림해야 하는지,
그게 결과가 같은지 다른지
관심이 없다면 회계업무를 개발할 수 없습니다.
회계지식이 없으면 회계개발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회계개발자가 회계 담당자는 아닙니다.
기획자가 되는 것과 기획업무를 아는 것은 다릅니다.
전문가란 “기술 외 업무적 소양”을 함께 가졌을 때 그렇게 불립니다.

스타트업의 개발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SNS 개발자”라면 적어도 SNS에 대한 여러가지를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01.개발자는 개발만 한다?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스타트업”에서 기획자를 뽑는 것에는 회의적입니다.
스타트업에서 기획이라는 건
업무이지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머릿 속에서 전체 스토리를 모두 다 만들 순 없습니다.
구성원이 아이디어를 놓고 다양한 논의를 해야 좋은 길을 찾아갈 수 있죠.
집단지성입니다.

대기업에서는 기획을 분업의 틀에서 접근합니다.
한 사람에게 맡겨지죠.
대기업은 조직이 커서 분업화가 필수죠.
분업화는 틀이 짜여진 경우에 효율적이지만,
틀이 없는 스타트업은 그렇지 않습니다.

스타트업에는 개발자에게 더 많은 역할들이 있습니다.
구현이란 아이디어를 연결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개발자가 아이디어를 구현하다보면,
다양한 허점, 굉장히 많은 다른 시나리오,
파생 아이디어에 부닥치게 됩니다.
그것도 제일 먼저 말이죠.

분업모드라면 개발자는 개발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구현 중에 발견된 아이디어는 숨겨버리죠.
다른 이가 발견할 때까지 묵혀둬 버립니다.

“왜 알고도 이야기 안해줬어 ?”
흔히 듣는 이야기입니다.

아는 만큼 보입니다.
개발자가 기획의 눈을 가져야 스타트업이 잘되는건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개발자의 본업은 개발입니다.
기획 쪽으로 식견을 가지는데는 한계가 있죠.
틀을 뛰어넘는 사고를 하기는 부족합니다.

뭔가 아쉽습니다.
그래서 기획자라는 사람을 뽑아놓고,
이런 부분을 해소해주길 기대합니다.

그런데 기획자라고 이런 걸 해결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수퍼맨이라 불러야 할겁니다.
수퍼맨은 상상속에서만 존재합니다.
수퍼맨을 기획이라는 이름으로 찾고 있지 않았는지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만일 그랬다면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문제를 방치하겠다는 뜻이니까요.

02.애매한 것은 미루지 말고 함께.

디테일이 애매할 땐 모여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클릭을 어떻게 처리하지?”
이런 거 말이죠.

한 사람의 역할로 미루면 안됩니다.
일을 해보면 디테일은 칼로 나누듯 자를 수가 없습니다.

물론 제품이 가져야 할 특징을
전담해서 고민하는 사람은 필요합니다.
그 사람을 제품 개발자라고 부릅니다.

여행 스타트업을 할 때,
여행가이드이면서 작가인 분과 일을 했습니다.
IT를 몰라서 인터넷 서비스를 어떻게 구현해야 할지 몰랐지만,
서비스를 만드는데 굉장히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재미있어지는지
현장을 들려주었거든요.
개발은 모르지만, 개발자였습니다.
필요한 걸 함께 만드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정의하기 모호한 모든 것을
기획이라고 부르고 누군가에게 미룬다면,
사실 아무것도 만들 수 없습니다.
정의하기 모호한 건
기획자라고 할 수 있는게 아니거든요.

일을 엄격하게 분업하면, 이런 갈등은 숨어버립니다.
자연스레 핑퐁게임이 일어납니다.
내일이 급한 작은 스타트업에겐 특히 치명적입니다.

03.프로듀싱할거면 아웃소싱이 낫다.

기획이라는 업무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방향성을 토의하고 상의하는 과정입니다.
한 사람 머리 속에서 쥐어짠 결과물(기획서라는 문서)을
최첨단 기술로 구현해주는 것으로는,
스타트업의 “생명력”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함께 모여 새로운 문제나 전략을 논의할 게 아니라면,
팀으로 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회사를 만들고
베테랑 아키텍트를 찾아가서 설계도를 그려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전문 개발사를 찾아가서 제품을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그럼 뭐가 하나 나옵니다.
그게 무언가를 만드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하지만, 이건 한 번만 만들어 파는 제품에 적합합니다.
2.0을 만들어야 하는 비즈니스라면 이렇게 안됩니다.
실험적인 아이디어로 계속 뭔가를 변경해야 하니까요.

분업화된 큰 회사라면 “기획” 역할을
제작자가 하기도 합니다.
아이디어를 짜내고,
고객을 연구하고,
성공원리를 발견하여
서비스에 추가하고 비즈니스를 책임집니다.
이런 경우라면 개발, 디자인은 그냥 아웃소싱해도 됩니다.

작은 스타트업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웃소싱은 정해진 무언가를 빠르게 만들기엔 좋은 선택입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삭제하거나 변경하기에는 매우 나쁜 선택입니다.

꽤 많은 아웃소싱 업체들이
동작하는 결과물에만 집중합니다.
범용적으로 유지보수할 수 있도록 배려하지 않습니다.
어떤 업체는 일부러 그럽니다.

설계도가 없으면 기능을 더하거나 뺄 수 없습니다.
제품을 시장에 맞게 바꿀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계속 시장에 맞추어서 변해야 하는 스타트업에게
그런 유연성이 없다면 도대체 무엇이 경쟁력일까요?

04.”업무”로 같이 하라.

기획이라는 업무는 개발자와 디자이너 모두 알아야 합니다.
아니, 스타트업 참여자라면 모두 알아야 합니다.

구성원 스스로 왜 만들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면,
영혼없는 결과물들로 서비스는 가득 채워지게 됩니다.

수퍼맨도 세세한 부분까지 지시하고 관여할 수 없으니까요.
타협하면 방치된 채로 소비자 앞으로 나가게 됩니다.

전략과 컨셉이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모이지 않는 수많은 짝퉁 서비스들이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지금 앱스토어를 들어가서 듣보잡 앱들을 한 번 깔아보세요.
어떤 것은 트위터를 닮았고, 어떤 것은 페이스북을 닮았습니다.
그것들이 얼마나 내 손에 감기는지 느껴보십시요.

좋은가요?
디테일은 서비스에 대한 이해와 자발적 참여가 없으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아이디어 외에 모든 것을 아웃소싱할 수 있다면,
기획자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사용자에게 무언가를 효율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라면,
기획이라는 “업무”는 반드시 팀원들과 함께 수행해야 합니다.

훌륭한 리더, 훌륭한 동료는 필수입니다.
기획이라는 업무에 익숙한 디자이너, 개발자가 필수적입니다.

실패를 한 사람의 잘못으로 몰지 않고 문제해결을 위해 같이 노력해야 합니다.
스타트업에서 100장짜리 시나리오보드를 그리는 기획자는 솔직히 실패입니다.
오히려 비즈니스를 꿰뚫어보는 베테랑 사업가가 절실합니다.

05.관심분야에 대한 외연을 넓혀라.

기계공학이 자동차로 가면 자동차 공학이 되고,
비행기로 가면 항공공학이 됩니다.

스타트업에 적합한 개발자는
사업적 감각과 여러 분야의 지식이 풍부해야 합니다.
특정 분야에 대한 인사이트가 깊다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개발자가 있을까요?
없습니다.

오히려 당신이 그런 개발자가 되어보는 것이 어떨까요?

서비스 스타트업에 관심이 있다면 개발 서적 외에
마케팅이나 서비스 관련 서적도 몇 권 사서 공부하십시요.
가수가 프로듀서가 되기도 하고, 배우가 영화감독이 되기도 합니다.
소프트웨어 개발도 당연히 그럴 수 있습니다.

인터넷 서비스만 그럴까요?
B2B 도 어떤 경우에는 아웃소싱보다는 좋은 개발팀을 만들어야 합니다.

개발자들이 개발에만 관심을 가지는 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자신이 가진 기술의 외연에
관심있는 산업군과의 인터페이스를 열어두세요.

기획도 공부하고 회계도 공부하고 운동도 공부하십시요.
그게 개발자들에게는 창조력이라는 힘을 가져다 줍니다.

알아야 보이고, 보아야 알게 됩니다.
스타트업 개발자에게 창조력(Creativity)이 아주 큰 강점입니다.
그리고 창조력은 호기심과 실행력,

성장에 대한 갈망이 만들어 냅니다.

끝.

스타트업 개발자”에 대한 답글 2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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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깊이 생각해 볼만한 내용이네요.
    저에게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2. 경영학 전공하고 혼자서 개발 공부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너무 감사드립니다. 불안감도 많았는데, 이 글을 읽고 불안감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화끈하게 열심히 공부해보겠습니다.

    1. 힘내라고 화이팅 보내드립니다. 경영과 개발은 분명 좋은 시너지가 날 것으로 기대합니다. :-)

  3. 댓글에서 언급하신 응용성과 유연성이 뛰어난 개발자가 되기위해서는 기술익히기에 항상노력하고 그것을 회사소스에 견고하게 적용시키고, 예를 들어 asynch servlet 이란 신기술을 소스형상관리에 적용시키기 위해서 팀의 관리자를 설득시키고 팀원을 설득시켜서라도 내가 익힌 기술로 코딩할려는 열정이 필요한것같습니다
    프리 오래한 나이든 개발자와 스타트업이 잘맞을수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런트 엔드중심으로 나이먹어왔고 신기술과 뉴프레임워크로 코딩하고픈 나이든 개발자도 많습니다. 업무경험이 많으니 기획의눈을 가진 개발자가 될수도 있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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