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세 개발자가 스타트업에게 하는 조언

다른 곳에 쓰려고 번역했던 글인데 이곳에 올립니다.

David Maynard는 1948년생으로 실리콘밸리 역사의 산 증인입니다.
개발을 못하게 되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할 정도로, 뼈속까지 개발자이기도 하죠.

60이 넘어도 개발할 수 있는 실리콘밸리 환경이 부러운데요,
우리나라도 이런 베테랑들이 필요한 회사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이 글이 주는 교훈은 이렇습니다.
스타트업은 기술이 준비될 때까지 길게 보아야 한다.
경험자분들에게야 당연한 소리이겠지만, 초보자라면 한번 되짚어 보아야겠죠.

신기술은 기존에 없던 문제점을 혁신적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하우의 부족으로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을 수 있죠.

사업이란게 너무 빨라도 실패하고 너무 늦어도 실패합니다.
그래서 공감이 더 큽니다.


David Maynard (1948년생)
David Maynard (1948년생)

※ 원문 : box.com 65세 안드로이드 개발자가 스타트업에 해주는 냉정한 조언 (2013.3.20)
※ 저자 : Ciara Byrne (소프트웨어개발자)

“데이비드 메이너드” David MaynardBox.com 에서 일하고 있는 안드로이드 개발자입니다.
65세의 나이로 현역활동을 하고 있죠. 그는 말합니다.

“쉽지 않죠. 개발을 할 수 없게 되면 그 때 회사를 그만두려 합니다.”

소프트웨어산업은 빠른 성공을 부러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상냥한 백발의 할아버지는, 자기 회사의 CEO인 “아론 리비”와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아론 리비”는 28살에 CEO가 되었지만, “메이너드”는 그 기간동안 28개의 언어를 사용했죠.
록히드, 제록스 팔로알토 연구소, 스탠포드 연구소, EA(게임회사), Google 등에서 말이죠.

1. 컴퓨팅 파워의 성장

“나의 40년 개발인생”

그는 자기 세미나에서 “컴퓨터광의 행복도”라는 그래프를 보여 줍니다.
행복도는 시간에 따라 증가하고 있었죠.

“저는 이 그래프에 동의합니다.
왜냐하면 반도체 성능이 6개월마다 빨라졌는데, 이 사람들은 이런 첨단기기들을 좋아했거든요.”

컴퓨팅파워의 성장이 눈부신 발전을 가져왔다는 걸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지금 기계들은 아주 많이 좋아진 겁니다.
제가 EA 에서 Atari 800 으로 게임개발을 했을 때는 45분씩 걸리곤 했습니다.
380kb 가 담긴 플로피 디스크로 컴파일을 했거든요.
이제는 모든 사람이 전 세계에 접근할 수 있는, 작은 컴퓨터를 호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고 있죠.”

“이건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획기적인 변화입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소프트웨어가 예술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거든요.
옛날에는 기본적으로 혼자 모든 걸 다 만들었습니다.
저는 예술가이자 프로그래머였죠.
다만 음악작업을 도와줄 엔지니어 한 명이 더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음악 엔지니어 120명이 한 팀이라고 합니다.(EA)”

2. 게임 사업에 도전

메이너드는 1970년대 후반에 파트타임으로 게임을 만들다가 EA의 개발팀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제록스 팔로알토 연구소에 입사하면서 처음으로 PC를 만지게 되었죠.
Alto 라는 컴퓨터였는데 당시 약 2만 달러(2천만원)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개발자들은 대부분 게임개발에 그 컴퓨터를 사용했죠.

“Maze Wars는 기존게임을 네트워크 버전으로 만든 최초의 3D 슈팅 게임이었습니다.
하지만 게임이 출시되자마자 이런 저런 이유로 작업이 중단됩니다.
관리자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개발자들은 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일부 개발자들이 치팅하려고 게임을 해킹합니다.
게임제작자들이 골치를 썩게 되죠.
참다 못한 제작자는 소스코드를 암호화해 버립니다.

1970년대 후반, 당시 “제록스 팔로알토 연구소”는 컴퓨터 사이언스의 총본산이었는데요.
(이곳에서 이더넷, 레이저프린터, 비트맵 디스플레이, 위지윅 에디터 등이 만들어졌죠.)
Maze Wars는 그 때 최초로 암호화된 소프트웨어 라이브러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개인적으로 새로운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Worms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 1994년에 출시된 게임과 이름이 같지만 다른 게임입니다.
개발하는데 꼬박 6개월이 걸렸는데, 회사에 이게 개인 제품이라는 걸 인정받는데 6개월이 걸렸습니다.

“저는 퍼블리셔를 따로 찾았고 그 때 EA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친구였던 스티브와 함께 EA로 들어가게 되었죠.
우리는 EA가 처음으로 고용한 개발자였는데, 우리들을 매우 아끼면서 예술가로 대접했습니다.”

메이너드는 이후 3DO 라는 콘솔게임회사에서 일을 했습니다.
지금은 폐업을 했습니다.
우리도 Xbox, Playstation처럼 게임머신을 만들고, 그 위에 돌아가는 게임을 팔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업은 잘되지 않았습니다.
개발시스템과 하드웨어를 컴퓨터 업체들에게 라이센싱 했는데, 그 때 699달러에 팔았습니다.
게임기로는 너무 비싼 가격이었죠. 잘 팔리지 않았습니다.”

3. 실패의 교훈

메이너드는 스타트업들이 좀 더 길게 보기를 바랍니다.

엔젤바트 법칙에서, 기술은 단기적으로 과도하게 장기적으로 부족하게 예측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나는 많은 스타트업들이 인내심이 부족해서 이 갭을 극복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경우를 수없이 보았다. 그들은 아직 기술이 준비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이미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4. 시대를 앞선 천재들.

메이너드는 초기 스탠포드 연구소의 시스템 프로그래머였습니다.
거기서 그는 NLS, Douglas Engelbart’s oN-Line System(세계 최초의 온라인 협업 시스템) 구현에 참여했죠.

oN-Line Sytem Project, Xerox PARC
oN-Line Sytem Project, Xerox PARC

당시 1968년 엔젤바트(1925년 ~ 2013년)는 연구소장이었습니다.
모두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죠. “Mother Of All Demos” 프로젝트의 책임을 맡았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마우스”와 “그래픽 인터페이스”, “워드 프로세싱”, “하이퍼텍스트”, 그리고 “화상회의”를
세상에 처음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한 번에 말이죠.
(참고로 엔젤바트는 시대를 앞서갔지만, 너무 앞서 간 탓에 한 푼도 벌지 못했습니다.)

The Mother Of All Demos, Engelbart (1968.12.9)
The Mother Of All Demos, Engelbart (1968.12.9)

“그는 제가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선지적인 두 사람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나머지 한 사람은 록히드 회사의 켈리 존슨(1910년~1990년)이었습니다.

그는 최소한 30년 정도를 앞서간 사람이었습니다.
미래를 제시하고 사람들이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불어 넣었습니다.
그는 컴퓨터를 사람의 지적능력을 강화하는데 사용하고자 한 최초의 사람이었습니다.”

켈리존슨은 록히드 사에서 스컹크 웍스라는 전투기 개발팀을 리딩했으며, 미국 전투기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1962년 컴퓨터가 탁상용 계산기이던 시절, 첨단 정찰기에 최초로 컴퓨터를 장착했습니다.
그 때 개발한 전투기는 아직도 현역으로 뛰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외계인으로 불릴 정도로 천재였는데, 엘젤바트와 달리 성공을 꽤 누리고 살았습니다.

메이너드는 직장에서는 사용되지는 않지만,아직도 뜨거운 열정으로 HTML5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를 감성적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저는 1969년 이후의 파도를 탈 수 있어서 매우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버클리가 컴퓨터 사이언스 학위를 주기 시작한 첫해에 학위를 땄으니까요.
그러나 만일 다시 선택해야 한다면 아마 바이오나 나노기술을 택했을 것 같네요. 하하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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